지난해 5월,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운영자 구본창 씨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사이트에 공개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 측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하는 구 씨의 행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함으로써 공익성을 담보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구 씨는 지난 1월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럼에도 국내 양육비 이행률이 낮은데다 현행법상 법적제재가 약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배드파더스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과 미지급 양육비 정보를 제보받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법원 판결문, 각서 등을 통한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공개된 바에 따르면 배드파더스에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자 수는 지난 4일(토) 기준 총 239명이다. 지난달 31일(화)에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김동성 씨가 사이트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이트가 생겨난 이유는 양육비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행을 하지 않는 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압박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 공개가 이뤄지자 밀린 양육비를 지급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배드파더스에 따르면 양육비 미지급 해결 건수는 지난 4일(토) 기준 139명으로,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 확인될 시 양육비 미지급자 목록에서 신상 정보가 삭제된다.

  그러나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자 중 5명이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사이트에 공개한 것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구 씨를 고소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현행법상 허위가 아닌 사실을 유포해도 명예훼손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5월, 구 씨는 벌금 300만 원에 약식 기소됐지만, 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해 정식 재판에 부쳤다. 이에 지난 1월 14일(화) 열린 국민참여재판(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평결을 내릴 수 있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는 배심원 재판제도)에서 배심원 전원이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한 구 씨의 행위가 무죄라고 평결했으며, 이를 반영해 재판부는 구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이의 생존권 위협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단순 금전 채무 불이행과는 다른 특수한 성격이며, 구 씨가 신상 공개를 대가로 이익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 방안이 강구되는 상황에서 양육비를 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겪는 고통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배드파더스에 게시된 신상 공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익성 실현이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내 양육비 지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국내 양육비 이행률은 낮지만, 현행법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법적제재는 약한 실정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2월 기준 양육비 이행률은 35.6%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배삼희 양육비이행관리원장(이하 위원장)은 “소송에서 이겨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배 위원장에 따르면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을 위반했을 때 최대 처벌 수위는 ‘감치명령’이다. 감치명령은 재판부 명령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거나 재판부 위신을 훼손하는 사람들을 재판부 직권으로 구속하는 제재다. 배 위원장은 “그런데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다면 강제로 양육비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양육비 미이행자에 대해 운전면허 취소, 출국 금지 등 처벌을 가하는 해외 사례에 비하면 현저히 약한 수준이다. 해외의 경우, △미국 △캐나다 △영국은 양육비 미이행자에 대해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한, 호주와 뉴질랜드는 출국 금지를 조치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양육비 미지급을 가족 유기범죄로 간주해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해외 사례와 같이 운전면허 제재, 출국 금지 처분을 골자로 하는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으나, 경찰청, 법무부 등 관련 부처의 반대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배 위원장은 “양육비 청구권 확보를 위해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고의적인 미이행자에 대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사이트 이름이 배드파더스인 것을 두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엄마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구 씨는 "사이트 운영자들이 처음 사이트를 만들 때 피해자의 80%가 여성이다 보니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사이트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양육비 미지급자 제보를 받고 있으며,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여성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마더스(Bad Mothers·나쁜 엄마들)’ 목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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